때 때 세상을 꽁꽁 얼어 붙이는 겨울엔 바위에 뿌리내린 풍란도 성장을 멈추고 봄을 기다릴 줄 아는데 조급함에 때를 망각하고 살지는 않는지 때를 잊은 생명은 혹독한 시련 앞에 끝내는 절망으로 쓰러질 뿐 삶에도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때가 되면 기러기 힘찬 날갯짓처럼 꿈을 향해 날아야 한다 때가 지나면 그때는 결단코 다시 오지 않으리. [문예사조06년2월호] 발표한 시 2006.02.04
남는 것 남는 것 까치가 신혼부부처럼 살다가 아카시아 외롭지 않게 빈 둥지를 남겼다 빈 둥지엔 깃털 사이로 불던 바람이 여전히 지나고 타향의 별들이 아스랗다 아스라한 별빛에 어린 유년의 추억 빈 둥지에 내려앉고 달빛이 보석처럼 튀던 개울에 벌거숭이들이 미역을 감는다 유성처럼 사라진 시간이 빈 둥지를 지난다. [문예사조06년2월호] 발표한 시 2006.02.04
평행 평 행 본디 유영하던 족속의 자유로운 피가 흘렀는데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바뀐 세상 무엇이 참인지 잊은 족속이 되었다 미세한 변화에 황망히 움찔거리는 평행에 길든 가련한 족속이여 가는 길이 늘 평행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네. [문예사조 05년 9월호] 발표한 시 2005.09.23
세상살이는 세상살이는 한 걸음 두 걸음 비틀비틀 걸어본다 보이지 않는 너의 속내는 세파속에 감추었나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낫다는 이 세상 한 번만이라도 찿을 수 있다면 --- 흔들흔들 쉬임 없이 걷는다 한 걸음 두 걸음 비틀비틀 걸어가다 어쩌다 마주치는 햇살 포근한 날에 아들놈 손잡고 강가에서 물놀이나 할까 보다 흔들거리는 세상 너도 비틀 나도 비틀 삶이 굴러다닌다. [문예사조05년 4월호] 발표한 시 2005.09.11
여정 여 정(旅 程) 소나기가 속옷을 적시기 전에 서둘러 가자 삶의 여린 마음이 부딪치고 쓰러져도 울지 못하고 차가운 시간 속에 피지 못한 꽃망울이 가엽다 뜨거운 가슴 풀잎 소리에 귀 기울이던 마음 석양의 노을이 물들기 전에 어서 가자 내 삶의 은하수를 찿아서. [문예사조 05년 4월호] 발표한 시 2005.09.11
강가에서 강가에서 해 저무는 강가에 서면 사삭이는 갈대들의 속삭임이 있다 모래 위에 새긴 발자국 따라 지난날의 기억들은 부서지는 파도로 켜켜이 쌓이고 파란 하늘엔 고운 노을이 내 젊은 날의 사랑이 되고 노을 속으로 날아드는 기러기들은 내 젊은 날의 꿈이 된다. [문예사조 05년 4월호] 발표한 시 2005.08.03
그리움 그리움 나뭇가지 흔들리어 바람이 불고 그 옛날 네가 머물던 자리에 내 몸을 열고 온 바람이 처연하게 날 울리고 있나니 그리운 사람아 우리의 추억의 강엔 함께 거닐던 둑길이며, 수줍은 밀어들이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립구나 사위어가는 별빛 속에 안타까이 돌아서는 눈물이 되어도 그리움 실은 하얀 돛을 올린다. [문예사조 05년 9월호] 발표한 시 200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