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77

동생 복숭아

경산 동생이 복숭아를 택배로 보내왔다 꽃눈 봉긋봉긋 돋듯 고향 생각 돋는다 한 입 베어 무니 기억 속 향긋한 과즙 간간이 고향 소식 전하는 동생 생각에 같이 뛰놀던 골목길 어제인 듯 선하다 육 남매 의좋게 살라던 부모님 유훈 반구대 암각화처럼 가슴에 새겼었나 당신은 복숭아 보내 주는 동생 있어 좋겠다는 아내 말에 속웃음 절로 나는 달콤한 동생 복숭아 농사짓던 부모님 모습 오롯이 그립다. [시하늘 100호 2020 겨울]

발표한 시 2020.06.26

금낭화

금낭화 마주하는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꽃송이 속 갈래 머리 수줍은 아가씨 모습 얼비치고 순애보 청년 멎었던 심장 꽃송이에서 뛴다 며느리 진분홍 비단 주머니 닮았다는 꽃 가느다란 꽃대에 조롱조롱 매달려 세상을 향해 전하는 영원한 징표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아래를 향한 다소곳한 모습에 먼발치서도 심장이 뛴다 피가 잘 돌아 가슴 벅차다. [두레문학 2020 가을호]

발표한 시 2020.04.07

초화화

초화화 낯설지 않다 꽃분홍 다섯 잎 그 속 노란 수술 오밀조밀 초롱초롱한 암술 하나 나와 다정스레 눈맞춤하고 있다 설렌다는 말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꽃잎 열 때까지 기다림의 순간이 설렜었구나 나는 귀도 없는 초화화 앞에서 떨리고, 보드라운, 숨소리 들리는 거리에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가녀린 꽃대 끝 초화화는 더욱 발개지고 이따금 가는바람에 몸 끄덕여 맞장구친다 꽃 핀다는 말 흘려들었는데 너를 보고 맘속 웃음꽃 피고서야 꽃 핀다는 거룩한 말 다시 새긴다 한 시절 우리에게도 아슬아슬한 꽃대궁 끝에 피워 올린 한 송이 초화화 같은 청춘이 있었기에. [시하늘 97호 2020년 봄호]

발표한 시 2020.03.13

봄, 산수유

봄, 산수유 노란 산수유꽃들이 겨울 뒤에 숨었던 색깔을 불러낼 시간 지난겨울 꽃눈 속 옹기종기 들앉은 꽃 순들이 맵찬 바람에 숨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용감하고 씩씩한 몇몇 꽃송이가 꽃잎을 뒤로 활짝 열어젖힌다 꽃바람이 꽃술을 흔들 때마다 음표처럼 춤추는 산수유 눈빛 차고 넘친다 벌 나비야 어서 오라 노랑 빛깔 부드러운 꽃잎이 안내하는 길 따라 깊숙하고 은밀하게 감춰놓은 향기와 달콤한 꿀 어서 와서 가져가라 햇살 눈부신 봄날로 초대한다 봄의 행진 앞줄에 산수유꽃들이 나선다 개나리 진달래도 뒤따라 동참할 것이다 무수히 돋아나는 푸른 눈들이 봄날을 푸르게 더 푸르게 물들일 거다. [두레문학 2020제27호]

발표한 시 2019.10.22

수선화 연정

수선화 연정 애절하다 물에 비친 그대 얼굴 두고 떠나지 못해 야위어 간 그대여 애달프다 겹겹이 외로움의 성을 쌓고 침잠하다 청초한 꽃이 된 그대여 애틋하다 볕 좋은 계절 다 두고 차디찬 계절에 저 혼자 푸르고 푸르더니 맵찬 눈보라에 가련히 흔들리던 잎사귀여 당신과의 사랑 끝내 이루지 못한다 해도 후회는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날이 가고 볕 좋은 봄날 꽃잎 열고 저 혼자 고요하게 미소 짓고 있구나 그립다 언제나 눈 맞춤 하고픈 나의 수선화여 오늘은 뜰 가득 그대 향기 넘치네 흘러 넘치네. [시하늘 94호 2019 여름]

발표한 시 2019.03.15

나는 가고 싶다

나는 가고 싶다 나는 가고 싶다 바람 불면 바람 따라 산 넘고 물 건너서 진달래 버들개지 지게 위에 춤추던 찔레랑 송기 꺾어 뛰놀던 참외가 동화처럼 익어가던 능금나뭇잎 햇살에 팔딱일 때 날 부르는 계집애 소리에 가슴 콩콩거리던 미역감던 냇가에 잠긴 달빛 수줍던 풀벌레 소리에 까닭 없이 가슴 저리던 내 목소리 골짜기로 메아리치던 꿈에 그리는 그곳으로 바람 불면 바람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복사꽃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소나무처럼 살다 가신 아버지의 추억이 머무는 곳 그리운 그곳으로. 나는 가고 싶다 [두레문학 2015 상반기 제17호]

발표한 시 2015.08.05

알바위

알바위 솔숲 젖무덤 같은 동산에 들어서면 돌옷 두른 바위 속 둥글고 오목한 알들이 옛 여인의 간절한 소망을 간직한 채 수 천 년째 잠잠 부화 중이다 구름 걷힌 밤이면 아기별 영혼이 시나브로 깃든다고도 하는데 옛 여인들이 돌로 문질러서 낳아 놓았다는 저 둥글고 오목한 알들 호젓한 시간 솔바람에 귀 대면 수 천 년 전 여인의 내밀한 기도 소리가 마을을 감싸는 불빛처럼 떠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알 위로 얼비치는 까만 눈동자 오롯한 삶을 간구하던 한 생(生)이 읽힌다. 김진환 [두레문학 2015 상반기 제17호]

발표한 시 201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