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겨울 산길

김진환 시인 2013. 12. 15. 14:30

겨울 산길 

야트막한 산길 따라 한참 걸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온 날의 생채기처럼 아리다 
낙엽이 바람 타고 날아오른다
한 줌 햇살 향해
허공에 발 디디려 애쓰던 간난한 시절이 
그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발걸음이 길바닥에 자꾸만 달라붙는다
햇살 떨어지는 떨기나무 사이로 
춘란 몇 포기 보인다 
언 땅에서 봄을 기다리며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뿌리의 신호다
갱년기의 겨울
냉혹한 시간을 지나서 벼랑 끝에 서 있다
쓰러진 마른 나무가 서 있는 나무에 기대어 있다
다박다박 걸어온 길이 가마득하게 보인다 
혼자서 조촘조촘 걸어가야 할 가마득한 저 길 
희망은 우리 살아서 꿈꿀 수 있지 않은가
바람이 분다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움츠린 겨울 숲을 흔들어 깨운다. 

 

[문예사조 2013년 사화집 남산골 글숲의 향기 수록]

'발표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개  (0) 2014.12.20
이별 뒤에  (0) 2013.12.15
주삿바늘  (0) 2013.12.04
본 적 없어도  (0) 2013.12.04
바람 불지 않는 날은  (0)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