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이름 없는 시인

김진환 시인 2010. 3. 31. 16:48

이름 없는 시인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철망 울타리에 기댄 채 목을 빼고 

말랑한 바람을 만들고 있다

바람이 찬데 어쩌나 싶어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몸을 살래살래 흔들어 시를 읊고 있다 

새벽 말간 이슬 몇 방울 마시고

어디 알맞은 시어 하나 건졌는지

연신 벙글거린다

 

더 빨리

더 크게

더 화사하게 피는 것이

갈채 받는 세상에 

철 지나 피어나는 일이

얼마나 고독했으면

저토록 검붉어졌을까

잎잎이 스민 내밀한 고독이

향기가 되어 하늘로 피어오른다 

 

길을 가다 보면 문득
뒤돌아보고 싶은 길이 있다

이름 없는 저 시인도

한 뉘를 뒤돌아보고 싶은 것인가

푸른빛 생명이 흙빛으로 돌아가는 늦가을 

홀로 시상(詩想)을 다듬는 

저 시인의 마음은 정녕 푸른 솔빛!

 

오!

한 송이 붉은 내 마음의 장미

어쩌면 열매 맺지 못하고

모가지가 툭 꺾인다 해도 후회는 없겠다.

 

김진환

[한국문예사조문인협회 2009년 사화집 시인의 자괴감(自愧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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