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시인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철망 울타리에 기댄 채 목을 빼고
말랑한 바람을 만들고 있다
바람이 찬데 어쩌나 싶어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몸을 살래살래 흔들어 시를 읊고 있다
새벽 말간 이슬 몇 방울 마시고
어디 알맞은 시어 하나 건졌는지
연신 벙글거린다
더 빨리
더 크게
더 화사하게 피는 것이
갈채 받는 세상에
철 지나 피어나는 일이
얼마나 고독했으면
저토록 검붉어졌을까
잎잎이 스민 내밀한 고독이
향기가 되어 하늘로 피어오른다
길을 가다 보면 문득
뒤돌아보고 싶은 길이 있다
이름 없는 저 시인도
한 뉘를 뒤돌아보고 싶은 것인가
푸른빛 생명이 흙빛으로 돌아가는 늦가을
홀로 시상(詩想)을 다듬는
저 시인의 마음은 정녕 푸른 솔빛!
오!
한 송이 붉은 내 마음의 장미
어쩌면 열매 맺지 못하고
모가지가 툭 꺾인다 해도 후회는 없겠다.
김진환
[한국문예사조문인협회 2009년 사화집 시인의 자괴감(自愧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