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중노릇이 어렵다

김진환 시인 2010. 3. 18. 09:22

제목을 '중노릇이 어렵다'라고 쓰고 보니 영 어색하다. 
   평소에 스님이란 호칭에 익숙해 있어서 일 것이다.
이 제목은 법정스님의 수상집 '서 있는 사람들'에 있는 맨 마지막 제목이다.
샘터사에서 1978년 4월 25일 초판발행하고 1984년 6월15일 중판발행한 책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2010년이니까 20년 하고도 6년이란 세월이 더 지났으니 참 오래된 책이다.

서두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다.
   '예전 노스님들께서 흔히 "중노릇처럼 어려운 게 없느니라" 혹은 "세끼 밥 얻어 먹기가 참 어렵구나"라고 하실 때 그저 겸손한 말씀이거니 하고 흘려듣고 말았는데, 요즘에 와서야 그때의 말씀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중노릇처럼 편하고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보기뿐. 안으로 살펴보면 세세한 예를 들 것도 없이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의 직분에 맞는 노릇을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법정스님께선 중노릇이 어렵다는 것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중노릇이 어렵다는 것은 생물적인 욕망 때문도, 복잡미묘한 그 대인관계 때문도 아니다. 호국불교다 뭐다 해서 실속도 없이 겉돌고 있는 교단의 현실 때문도 아니다. 중 노릇이 어렵다는 것은 남의 복전(福田)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심전(心田)이 시원치 않으면서 어떻게 남의 복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또 중노릇이 어렵다는 것은 승보(僧寶)의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보란 무엇인가. 더 말할 것도 없이 남의 귀의처(歸依處)가 되어야 한다는 뜻.' 이라고 했다.
 
   다시 '중노릇이 어렵다'란 말을 우리의 삶 속에 끌어 넣어 보자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경찰은 경찰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라고 하면 어떤가.
  범죄 없는 세상이 온다면 경찰이나 검사나, 판사 같은 직업은 없어도 좋을 직업이다. 하지만 생명은 유한하고 유한한 생명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생명을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존재는 다양한 형태로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범죄 없은 세상은 이상향일 뿐이다.
현실에선 범죄는 일어나고, 또 범죄가 창궐하지 못하도록 예방을 해야하는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중노릇이 어렵다'는 이 글은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현 위치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하는지를 알려 주는 지침이 될 말이다.
나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그렇다면 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자주 반문해 봐야 할 일이다.
 
나는 요즘 남편 노릇과 아빠 노릇하는 게 제일 어렵다.

by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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