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다
한 열흘전에 치료한 아들 치아 교정 장치가 떨어져서 치료차 울산에 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리는 울산인지라 치료를 마치고 가족 저녁거리를 사고자 패스트 푸드점에 들렀다.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지난번에 받아둔 쿠폰 2장을 쓸 요량으로 "지금 음식을 사면 쿠폰 2장이 나오니 이 쿠폰 2장과 새 쿠폰으로 쿠폰에 있는 것 주세요" 했다. 그랬더니 종업원이 "이 쿠폰은 기간이 지나서 안 됩니다" 하는 것이다. 열흘 전쯤 받아 둔 것인데 벌써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런 것도 유효 기간이란 것이 있었나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그러면 이건 못쓰는 거네요." 했더니 종업원이 "다른 걸로 바꿔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럼 다른 걸로 바꿔 주세요." 했더니 종업원이 "그게 3장은 있어야 하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쿠폰은 두 장뿐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은근히 아까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좀 억지스런 말을 했다. "지금 음식 사는 것에 쿠폰이 2장 나오잖아요. 그 쿠폰 쓰면 되겠네." 했다. 그러자 종업원이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업원은 내가 꽤 답답했던 모양이다. 뜸을 들이더니 안내판에 쓰여 있지도 않은 것을 주겠다고 한다. 물론 내가 미쳐 못 봤을 수도 있지만. 그게 뭐냐고 했더니 2만 원 이상 구매하면 보디 크림과 영화할인권 중의 하나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디 크림을 달라고 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데 오늘은 왜 그리 쿠폰에 애착이 가던지. 음식을 사고 패스트푸드점을 나오며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아빠,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아빠는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하고 매우 못마땅해했다. 그리고는 "이제 아빠하고는 음식을 다시는 사러 안 올끼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되돌려 줬다. "야 아들, 뭐가 그게 부끄럽노, 나는 쿠폰이 아까워서 안 그랬나" 그랬더니 아들이 이 아빠가 못마땅한지 몇 마디 더 거들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가 아들 나이만 했을 때 나도 아버지가 못마땅스러워 여러번 따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들이 내게 하듯 나도 아버지께 이렇게 따졌을 것이다. 가끔 아버지께서는 시골 5일장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끼 때가 되면 국밥집에 들리셨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꼭 주인 더러 국물을 더 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일이 부끄러웠었다. 나도 그때는 아버지의 행동이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사소한 것도 무척이나 부끄럽게 생각되던 나이였던가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성격도 항상 내 것을 줄 줄만 알았지 쉽게 얻어 먹지못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넉살이 많이 늘은 것인가. 요즘은 음식점에서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좀 더 달라고 당당히 부탁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 이 일을 다시 생각하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떠올라 여기에 옮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
네 살 때 -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여섯 살 때 -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여덟 살 때 -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열 살 때 -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진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열네살 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스물한 살 때 - 우리 아빠말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스물다섯 살 때-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오셨으니까.
서른살 때 -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서른다섯 살 때 - 아버지에게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하지않게 되었다.
마흔 살 때 -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쉰 살 때 -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쳐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 아들아 이 아빠도 나도 모르게 네 할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구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팟종과 꿀벌 (0) | 2009.05.17 |
---|---|
[스크랩] 팬션창업 (0) | 2009.04.16 |
이종 격투기에서 배운다 (0) | 2009.01.27 |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0) | 2009.01.27 |
헛되지 않은 삶/ 에밀리 디킨슨 (0) | 2009.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