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저수지 안 축구공

김진환 시인 2008. 7. 3. 15:17

저수지 안 축구공

 

저수지 안에
낡은 축구공이 한가로이 떠 있다

 
보물이라도 만난 듯 찬찬히 살펴보는데
실밥이 터져 가죽이 삐죽 불거져 있다


누군가의 발길질에 
참 모질게도 차였던 모양이다 


잔물결에도 욜랑욜랑 흔들리는 축구공
저수지 안에 들어와서야 
저 혼자만의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축구공 앞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괴고 
눈 감고도 훤히 그릴 수 있는 
형편없었던 내 삶의 궤적을 쫓는다 


그리고 아직 축구공 속에 남아있을
얼마간의 공기를 생각한다 


축구공이 축구공일 수 있게 하는

마지막 공기


물속에선 새우들이
축구공을 톡톡 차면서 장난질이다.

김진환

[한국문학방송(DSB)문인글방 작품선집 제1집 '반딧불의 서정'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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