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민달팽이 생각

김진환 시인 2008. 1. 5. 21:13

민달팽이 생각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진다

느릿느릿 민달팽이처럼

발걸음을 떼어 놓는 뒷짐 진 할머니 


도로를 채 건너기도 전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버스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육식동물처럼 으르렁으르렁거린다

버스를 물끄러미 훑어보는 할머니
꽁무니 들썩이며 멀어지는 버스
할머니의 여윈 두 팔이 더듬이가 되어
느릿느릿 허공을 더듬는다

비온 뒤 산책길 숲속에서 만난
민달팽이 생각이 난다
'민달팽이야 넌 참 좋겠다
아무리 느려도 탓하지 않는
숲 속에 살아서.'

김 진환

[문예사조 08년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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