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길을 묻다

김진환 시인 2006. 3. 29. 20:15

길을 묻다

 

한 사내가 길을 묻습니다

통문사(通文寺) 가는 길이 어디냐고

그 길은 격동의 날 위에

바람 타고 날아오는 풍경 소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할아버지의 책 읽는 소리가
건넌방 호롱불빛처럼 정겹게 흔들리던 길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내가 길을 묻습니다

판타지아 가는 길이 어디냐고

그 길은 격랑의 시간을 지나

불빛 타고 흩어지는 노랫소리를 찾는 길입니다

아버지의 한 잔 술에 부르던 노랫가락이

마을 어귀를 흥에 겨워 지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내가 길을 묻습니다

유토피아 가는 길이 어디냐고

그 길은 흰 말을 타고 구름처럼 날아서

은하수 건너 흐르는 맑은 심장 소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던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인고의 시간을 넘던 길이었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한 사내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물어 올 것만 같아
교차로에 안개처럼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 길은 여로의 마지막 불빛입니다
풀씨가 땅 위로 떨어집니다
풀씨가 가야 할 길을
해와 달, 바람과 비가 인도할 것입니다.

[한맥문학 2006년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