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시

고향의 보리밭 살폿한 향기여

김진환 시인 2021. 5. 31. 21:34

칡 넝물과 소나무로 우거진 산구비를 꺽어 들면
동구나무가 팔 벌려 반기는 호젓한 고향 마을
싸립문 밖으로 벌 나비 잉잉 날아 다니고
보리내음 싸아한 들길에 서노라면
이랑마다 종다리의 고운 목청이 감돌아와
댕기 딴 누이들 김매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쉼 참에 깜부기 뽑아 불던 보리 피리 소리
필릴리 필릴릴리 필릴릴리 필리리
그리운 가락따라 옛생각이 아련히 피어 오른다.
개구장이 숯 깜장이 동갑네기 또래들
진달래 꽃묶음으로 얼굴을 가리고 보리밭에 숨어서
꽃 줄께 이리온 ----
문둥이 흉내로 쑥캐던 계집애들 화들짝 놀래키고
허리춤의 책보도 팽개쳐 둔 채
가재잡이, 새알털이로 달리고 딩굴다가
똥장군 푼 동네 어른 쇠죽 쑤러 돌아 가며
어서 집에 들어 가라 나무라실 때 까지
긴긴 하루해가 아쉬웠던 산 그늘
지금도 그 자리에 해는 저물러
저녁놀이 빈 하늘에 가득 차는데
황토흙 기름진 밭둑을 홀로 거닐며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
휘파람 아늑하게 번지는 노래
고향의 보리밭 살폿한 향기여 

 

[담은 글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