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주삿바늘
김진환 시인
2013. 12. 4. 09:52
주삿바늘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한 사내아이가
진료실을 나와 고양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아이 엄마가 아이 이름을 차지게 부른다
한참 뒤 아이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온다
엄마와 간호사가 아이를 주사실로 데리고 간다
주삿바늘을 거부하는 아이의 간절한 외침에
문밖 공기까지 긴장한다
주사 맞기 싫어
다음에 맞을 거야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또 한 간호사가 아이의 외침에 이끌려 주사실로 들어간다
주사 안 맞을 거야
주삿바늘이 팔뚝에 꽂히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얘야 주사기 보지 말아야지
차마 외면할 수 없어 한마디 거들었다
의사가 진료실을 나와 주사실로 들어간다
어머니, 아이 꼭 잡으세요
아이의 눈은 여전히 주삿바늘 방향따라 꽂힌다
내일은 꼭 맞을게요
코뚜레를 거부하던 송아지의 눈을 떠올린다
주삿바늘을 거부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진다
의사가 걸어 나오며 한마디 흘린다
얘야 미안
팽팽하던 의원실 공기가 일순 느슨해진다
나도 아마 저 땐 저랬었겠지.
김진환
[월간 문예사조 201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