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생각

빨아야 한다는 걸 말 안 했네

김진환 시인 2009. 1. 27. 08:39

빨아야 한다는 걸 말 안 했네.

육십이 넘은 주유원 아저씨가 화장실 쪽에서 걸어나오며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으신다.
그러면서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에이. 훅 불었더니 입안에 다 들어 왔뿌네."
'저런 빨아야 되는 것을 불었구먼'
"아저씨 거거 빨아야 하는데요" 했더니
아저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걸어가 버리신다.
이유인즉슨
주유기 스파우트가 고장 나서 기름을 다 쏟았다고 했다.
그래서 평상시 고장 유무를 점검하는 방식대로 해 봤더니 스파우트 고장이 아니었다.
스파우트를 점검할 때 아저씨가 유심히 보시기에 점검하는 방법을 알려 드렸는데,
그걸 잘 알아듣질 못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3단 위치에 놓으시고 딸각 소리가 나면 고장이 아닙니다.
고장이 아니니 그대로 쓰세요." 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스파우트 센스가 고장 나면 기름 주유시 자동 끊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기름이 기름탱크 밖으로 넘친다.
또 스파우트 고장이 아닌데도 기름이 기름탱크 밖으로 넘치는 경우는
주유원의 주유건 사용 미숙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기름탱크에 기름이 가득 차 있는데 3단으로 주유를 하면
자동 끊김 센스가 감지를 해도 이미 너무 많은 양이 들어가 버려
기름이 기름탱크 밖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아저씨가 자신이 주유건을 잘 못 다뤄서 일어난 일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궁금하면 물어보면 될일을 내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아저씨도 나처럼 한번 해 봤던 모양이다.
그런데 빨아야 하는 것을 훅 불었으니 기름이 입 안으로 튀어 들어올 수밖에.
또 입안에 들어 온 기름이 쉽게 제거될 리 있나.
세면장으로 들어가고서 한참 뒤에 나온 연유를 알고선 혼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