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약씨 되다
강씨 약씨 되다
인간은 빛이 없는 동굴에선 몇 일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십 여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강씨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우유 수집 차량을 운전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강씨를
가까이서 지켜 본 나로선 생활력이 매우 강한 분으로 알고 있었다.
늘 성실해 보였고 주먹은 벽돌을 몇 백장을 깼는지 굳은살이
큼지막하게 박여 있었다.
그리고 강철빛 피부는 그런 강씨를 더욱 강하게 보이게 했다.
평소엔 별 불평 없이 늘 씩씩하던 강씨가 오늘은 얼굴이 많이 어두워 보인다.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종이컵에다 커피믹스를 태우더니 한 숨을 내쉰다.
담배를 끊은지 오래지만 오늘은 담배를 태워야 겠다며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한다.
담배를 피워 물고는 대뜸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한다.
"지가 대통령 당선되면 삼천포인트는 올라 갈끼라고 하던 X같은 새끼가
천포인트가 뭐꼬" 하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아들 학비 걱정이 앞서서 쉬는 날이면 일용직이라도 해 볼까 하고
인력 개발회사를 찾아 갔는데 이거는 일 하겠다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도
자리가 엄따 아입니껴" 한다.
"잘 살아 볼라꼬 예, 그래도 시간날 때 마다 지게차 면허라던지 대형차 면허 그리고
이것저것 자격증을 한 열댓개 안 따 났십니껴.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껴?" 하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는다.
담배 연기가 사무실에 자욱이 쌓이는데 불을 비벼 끄고는 다시 또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댕긴다.
"지는 예 나대로 열심히 살아 볼라꼬 예. 그 뙤약볕 아래서 해수욕 오는 손님들을 위해
교통봉사 한다고 생 고생 고생 안했능교.
해병전우회 봉사 그거 미쳤다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후회됩니더.
그 시간에 돈 벌라꼬 했으면 지금보다는 마이 안 나았겠능교." 한다.
"내 친구들은 예. 지대로 공부 했다고 하는 놈들은 동창회 가도 기 죽어 산다 아입니껴.
지대로 공부도 안하고 죽어라고 돈만 벌라카던 아들이 이제 마 돈 마이 벌었다고
동창회 모이마 제일 큰 소리친다 아입니껴.
그래가꼬 나는 동창회 모임에 가는 것도 겁난다 아입니껴." 하고는 씩씩거린다.
도대체 앞 날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년이면 아가 대학교 가야 하는데 우짜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차 살때 팔천만원 하던 차가 팔라고 내 놓의끼네
사천만원에도 임자가 엄서니 이거 우야마 좋겠능교?"
지금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참 딱한 노릇이기도 하다 일을 계속 하자니 수지가 맞지 않고
일을 접자니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고 참 힘든 세월이다.
그렇다고 나도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처지도 아니다.
지금 내 처지가 저 강씨보다 나은 게 별반 없으니 말이다.
나도 수입은 줄고 미수금은 자꾸만 늘고, 부실은 늘어나고,
나도 내 인생이 부도날 판이니 내가 누굴 위로할 처지도 아니다.
그래도 위로를 한답시고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예." 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강씨는 불의을 보면 못 참고 정의감에 물불 안 가리고 앞장섰던 그 기백도 이젠
무의미 하다고 한 마디 더 던진다.
웅덩이 물이 바싹 말라갈 때쯤 미처 개구리가 되지 못한 올챙이 수 백마리가
한 모금의 물이라도 더 마시겠다고 허공을 향해 입을 벙긋거리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 경제 상황이 말라가는 웅덩이 속 올챙이 처지와
다를 게 무었이란 말인가
대기업은 신규투자를 망설이고 은행은 쉽게 돈을 풀지 않고.
인간은 삶의 앞길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절망할 수 밖에 없다.
빛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한 없이 강할 것만 같은 강씨가 오늘은 약씨가 된 것만 같은 쓸쓸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