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한 시

절뚝거리다

김진환 시인 2008. 3. 18. 20:19

절뚝거리다

비가 눈앞을 가리며 쏟아지는데 
뒷다리 하나 절뚝거리며 
골목길을 걸어오는 개 한 마리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듯 
가만가만 옆걸음 치며 걷는다. 

이따금 걷던 걸음 멈추고 
빗물 젖은 눈망울을 끔뻑이며 
누가 몽둥이라도 들고 뒤따라 오고 있는지
물끄러미 훑어보다가 
깨어진 균형을 다시 잡으려 
나머지 세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다. 

저 개도 한때는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적 시절이 있었을 게다
털을 타고 스미던 빗물이
살가죽을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절뚝거리는 개 한 마리 앞서 가고 
그 뒤를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낯선 사람들 
어쩌면 이리도 낯 익은 풍경인가.

김진환

[T.S 엘리엇 기념 문학상 수상작, 계간 문예춘추 2008년 봄호수록]